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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생각들

2012년 신년 특집 삽질 - 자본주의와 나의 삶 - 돈

본디 연말 포스팅이었으나, 시일과 기간이 멀어지다 보니 이제서야 씁니다.
마지막 학기를 들으면서 '사회철학'이란 과목을 듣다가 기말 과제가 '자본주의와 나의 삶'이라는 주제였습니다.
에세이를 쓰는 것이어서 여러모로 준비했는데, 정작 시험 직전에 모두 다 폐기하고 새로이 써버렸네요.

제가 대학에서 배웠던 것들을 최대한 녹여서 써 보려고 했었는데, 결국은 실패하고 제 삶 이야기만 주절거렸습니다.
점수는 괜찮게 나왔습니다만, 썼던 내용을 블로그에서 주절주절 써보는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한번 써 봅니다.
물론 소재만 가지고 와서 보충하고 다시 재보수해서 쓰고 있으니 전반적으로는 많이 달라졌겠지만요.

일단 예정은 5부작인데, 당시 수업의 큰 주제 5가지에 따라서 쓸 예정입니다.
올해 내로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일단은 시간나는 틈틈이 써 볼 생각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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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보지 못하던 새로운 것을 보면 흔히 '무엇인가'를 물어본 다음에 이렇게 물어봅니다.

'얼마했냐?' '얼마짜리냐?' '얼마들었냐?'

여기서 '얼마'냐는 상품가격, 혹은 결과를 위해서 들인 '비용'을 말하는 것이죠. 결과적으론 '돈을 얼마나 사용했냐'는 겁니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자본은 쉽게 말하면 '돈'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복잡하게 들어가면 자본 속에 '돈'이 존재하지만, 가장 알아듣기 쉬운 건 '돈'이겠죠. 모든 물건은 돈으로 계산되며, 돈으로 구매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팽배합니다. '황금만능주의'라며 비탄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재로 돈으로 계산되는 경우가 대다수니까요.
흔히 드라마에서 나오는 말이 있죠? '얼마면 되겠니?'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움직이게 하려고 합니다. 아니면 광고에도 있지요. '10억을 받았습니다'라는 보험광고.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돈이 지불되었는데, 슬픔보단 안정감이 느껴지는 광고는 사람의 가치보다 그가 남긴 재산이 더 크게 비춰집니다. 물론 보험은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여 부담을 적게 하는 방파제기도 하지만, 사망시 지급되는 보험은 더욱 비참합니다. 내 존재는 없고, 나를 아는 존재에게 내 가치를 물려주니까요.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지금 와서는 이름 대신 돈을 남기고 갑니다. 보통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가 했던 행동보다는, 형제자식들에게 '재산'을 얼마나 더 남겨줄까에 주목할때도 있습니다. 멀게는 세계재벌인 빌게이츠, 스티븐 잡스에서, 국내로 이건희를 봐도, 굴지의 재산을 지닌 이들의 유산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주목하기도 하지요.

돈에 대해서 상세히 말한 철학자로는 게오로그 짐멜을 꼽을 수 있겠지요. 주요 저작 중에 '돈의 철학'이란 것도 있으니까요. 사실  짐멜의 학문은 모더니티 분석에 가깝지만, '돈의 철학'이 뛰어난 시사점을 보여주는 저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짐멜의 '돈의 철학'은 모던 사회, 근대의 저작이라 현대와는 조금 다른 점들도 있습니다. 노동자(프롤레탈리아)는 문화를 향유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대중화라는 물결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어느 문화든 취미든 조사하고, 노력해서 향유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돈만으로 해결되지도 않고, 일정 경험과 지식이 쌓일 때까지 제대로 할 수 없는것도 있습니다만(....)

현대는 상대주의적 세계상 속에 있으며, 지속적인 경험이 강조되고, 인식이 지속적으로 변형되거나 수정됩니다. 또한 사물들 사이에는 지속적인 평등화가 일어납니다. 모든 가치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는 '돈'의 존재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조금 학술적으로 들어가지만, '화폐'는 노동가치를 물질적인 존재로 고정시킨겁니다. 돈의 가치는 곧 노동의 가치입니다. 근대 이전까지 모든 가치는 고유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개념이 들어오면서 모든 가치는 노동으로 통일되었죠.
예를 들면, 내가 사냥을 해서 짐승 한 마리를 잡는 데 들인 노동시간이 3시간이 걸렸고, 물고기 한 마리를 잡는 데 들어간 노동시간이 1시간이라면 짐승 한 마리는 물고기 세 마리와 교환되어야 합니다. 일한 시간이 같기 때문이죠. 여기서 일의 복잡성, 전문성 등이 들어가면서 교환공식은 더욱 복잡해졌지만, 결과적으로 물건을 교환할 수 있는 공통분모는 '노동을 통해서 생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을 통해서 내 소유로 만들었다'는 쪽이 정확할 겁니다. 내가 들인 노력만큼 타인의 노력과 맞바꾼다는 것이죠. 그런데 노동으로 생산한 물건은 가지고 다니기도 번거롭고, 내가 원하는 다른 물건과 바꾸기도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 '빨간 클립' 하나로 시작하여 다양한 교환과정을 통해 집을 가지게 된 카일 맥도널드의 실화가 있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면 물론 '필요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교환'이지만, 그만큼 교환을 반복하는 것도 번거로운 것도 사실입니다. 카일 맥도널드는 1년에 걸친 교환으로 집을 구했으니까요. 그래서 노동가치를 다른 물건으로 대체하여 나타내기로 합의하여 나온 것이 '화폐'입니다. 그냥 돈이라고 하면 쉽게 말할 수 있으니까, 이정도로 넘기고....


'그래도 선물을 받는 쪽은 순식간에 끝나지만 주는 쪽은 어떤 게 좋을까 고민하는 시간...
고르는 시간과 넘겨줄때까지의 두근거림이 한가득 한가득이어서 즐거운 시간을 받는걸.'
-아만츄 2권 中

가지기 직전까지의 두근거림, 돈을 주고 내가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실상 물건을 사고 나서는 어느정도까지 활용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저도 책장에 책이 한가득 있긴 한데, 한번 읽고 나서 다시 읽을 때가 별로 없거든요. 다행히 머릿속에 어느 이야기가 어느 책에 있었더라~ 정도는 남아있기에 글거리로 쓰려고 생각나면 찾아서 긁어오는 정도지요. 자주 들춰보는 책이 있다면 만화책인데 그 외는 수업자료 재탕해서 이런 글 쓰는데 써먹는거죠 -_-a 아마 이번 테마로 글을 쓰고나면 다시 들춰볼 일도 거의 없겠지만... ㅇ>-<

짐멜의 이야기 중에서 인상깊었던 문장은 '돈은 오로지 자신의 가장 고유한 영역 내에서만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내적인 것을 지키는 수문장이 된다' 입니다. 부자의 취향이 괴팍해도 저사람은 '돈이 많으니까' 괴팍한 짓을 해도 사회의 허용치 이내라면 관대하게 넘어갑니다. 그런데 돈이 없는 사람이 고상하다고 취급받는 걸 하면 '돈도 없으면서 삽질한다'면서 내려보기 바쁘더군요.그러나 어느 매장을 들어가도 '안녕하세요, 고객님'이라며 깍듯한 대우를 받습니다. 나는 알고보면 아무것도 없는 일개 찌질이인데, '돈'을 가지고 있다는, 구매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중받습니다. 사실 점원들은 사람을 보고 인사하는것도 아니고, 내가 사용할, 소비할 '돈'을 존대하는 겁니다. 마르크스식으로 하면 자본가가 나한테 돈을 주고, 내 주머니에 든 '돈'을 자기한테 돌려받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거죠(...) 제 캐치프레이즈는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십덕후'인데, 덕후짓 하는데 돈이 없으면 어려운 것 투성이입니다. 덕후를 노린 마케팅 상술에는 '한정판 발매'가 최악입니다. 명품브랜드의 상술이기도 하지만, 어떤 물건이 '한정판매'라고 하면 지금 지르지 않고 언제 지르느냐!란 고민이 많습니다. 이걸 지르고 나서 후회하는 일도 많기는 한데..... -_-
문제는 이렇게 지르고 나서 구경도 안하고 박아두는게 대다숩니다. 사실 지금 프리미엄 붙어가는 한정판 물건이 3개쯤 있긴한데(...) 셋 다 포장도 안뜯고 방치중이네요. 어떻게 생각하면 인텔 페이스북 계정에 연재하는 마조&새디 82화 '잘못된 만남'과 83화 '잊혀진 찬장'편을 보면 물건을 지르고 잠시 쓰고 구석에 박아두는 일상이 딱 나옵니다. 사실 대다수가 이런 상황이 아닐까요? 눈만 돌리면 사둔 게임이나 만화가 썩어가는게 아쉽긴 한데, 즐길 여유를 만들기도 전에 다른 즐길 거리가 한가득 나와버리는데 한숨만 나오죠.

마트에서 제가 일했던 분야는 '야채'입니다. 그런데 물건을 사 갈 때는 '과일'을 사서 가는 일이 많습니다. 최근 겨울이다 보니 장판 속에서 귤까먹는 재미가 쏠쏠하거든요 'ㅅ')b 네이버에 연재중인 웹툰 가우스전자 137화 '매출'편을 보면 씁쓸한 진실을 일부 볼 수 있습니다. 대기업은 일부의 매출이 떨어져도 대치점에 있는 영역이 호조를 이루어 평균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리플에 '사원이 최우수 소비자'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게 딱 맞는 말이죠. 사실 제가 일하는 마트도 똑같습니다. 여직원 비율이 높고 연령대도 높다보니 다들 퇴근할 때 쯔음 되서 집에 가는 겸사, 반찬거리나 야식거리를 사 가는 경우가 많더군요.

주간이면 그나마 괜찮은데, 야간의 경우는 남들이 좋은 건 다 사 가고 저질만 남는 경우가 대다수죠. 그래도 그 중에서 할인된 물품 중에서 싼 것들을 사 가는 것으로 낙을 삼는 분들이 많더군요. 저도 마감반이라 직원쇼핑이 허용되는 11시쯤에 장보러 가면 이미 동난 물건이 산이죠. 오락소설 중에 '도시락전쟁'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반값으로 할인된 도시락을 얻기 위해서 피터지게(?)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값싸게 좋은 물건을 구하려면 정말 눈치봐야 할 것들 투성이입니다. '할인될 때까지 물건이 남아있을까? 혹은 갔는데 눈앞에서 품절되면 어쩌지'하는 고민이죠. 대형마트도 물건이 조금 더 많이 있을 뿐이지, 물건이 동나는건 똑같으니까요. 빵 하나 사려고 일주일정도 빵집쪽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도 지치더군요. 그래도 맛있는 물건이라 온 김에 사 가고는 싶고, 그렇다고 쉬는 날에 오기도 싫고, 제 값 주기도 싫고... 보통 합리적이란 말은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를 산출할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겁니다. 만약에 사과를 사는데, 조금만 떼어내면 먹는 데 지장없는 물건을 산다면 효율적인 선택이죠. 물론 신선도가 떨어져서 맛도 조금 아쉬울 수 있지만, 그만큼 내 구매력(돈)을 온존할 수 있기에 싼 물건을 사려고 노력하죠. 가격이 20%~50%정도 싸진다고 해서 맛이 그정도로 떨어지진 않거든요? 상황에 따라서는 당일만 판매하는 물품이라 싸게 팔 때도 있거든요. 주로 생선코너나 즉석조리 코너가 그런데, 딱 당일 팔 분량만 매장에 내놓습니다. 그리고 마감시 남은 물건을 다 버리죠. 버릴 바에는 조금 싸게 팔아서 이득을 남기는게 상업에서는 당연한겁니다. 100을 버리기보다 50으로 싸게 파는 게 남는 거니까요.

신기한 건 살면서 '돈을 쓰는 법'을 알게 되는건지, 사람의 씀씀이가 나이를 먹으면서 커져간다는걸 느낍니다. 어릴 때는 조금만 있어도 됐고, 고등학교 때까지 교통비 외에는 딱히 용돈을 받은 기억도 없는데, 어떻게든 다 버텼거든요. 그런데 어째선지 대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용돈이 필요하게 되었고, 가진 만큼의 금액으로 버티게 되었습니다. 군대가기 전까지는 한달에 10만원으로 교통비까지 다 했는데,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15~20만 정도 있어야 어떻게 버티더군요. 4학년이 되서 보니 한달에 교통비/통신비 빼고 20만원 정도는 있어야 그럭저럭 되더군요. 돈을 크게 쓰는 데 거부감도 없어져 가고, 돈을 써야 하는 자리도 많아지고... 분명히 난 돈을 벌어서 내 여유가 나름 있었을 텐데, 어째선가 내 주머니에는 돈이 남은게 없습니다. 트위터에서 본 개그중 하나지만, '월급이 로그인하자 각종 카드가 퍼가는' 상황이 눈물겹더군요. 분명히 돈은 내 소유인데, 내가 가지고 쓰는 돈보다 통장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어떻게 보면 신용카드는 제 미래를 담보잡아 현재를 즐기게 만드는 최악의 존재입니다. 내 미래의 구입력을 댓가로 현재의 지름을 이루어 주니까요. 다행히 지금은 교통비/통신비(핸드폰 요금) 외에는 고정으로 나가는게 없지만, 결제대금을 생각하면서 통장 잔고를 남기는 것은 꽤 번거롭고 귀찮은 일입니다. 같이 일했던 정직원 중에는 한달 사는 돈을 신용카드로 버티고, 월급이 나오면 매꾸는 일이 계속된다더군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로 넘어갈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하는, 그 분의 모습이 서글픈 우리 현실이라는걸 느꼈습니다. 한 달 월급으로 뭘 할까 고민하는건 20대의 고민이고, 30대의 고민은 '돈이 얼마나 통장에 남을까'하는 것이더군요. 그만큼 신용이란 이름으로 미래의 구매력을 희생하고 있는거죠.  동시에 나의 미래도 메여서 희생되는 느낌이 듭니다... -ㅅ-

할 이야기는 이리저리 많았는데, 계속 손을 대다보니 첨삭할 이야기가 넘쳐나기 시작해서 더 쓰는건 포기해야겠습니다.
이 글도 거의 3주 가까이 교정하고 첨삭하고 퇴고했지만, 아직도 소재가 넘쳐나서 계속 쓰다간 답이 없어보이네요... ㄱ -)
나중에 여유가 되면 외전이나 번외 이야기로 추가하도록 하지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