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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철학상담 5주차 에세이.

망할 교수가 에세이에 논리적 구조나 명료한 문장을 요구하기에 욕이 나오지만, 그냥 글이 만족할 만큼 쓰여서 블로그에도 올리기로 했습니다 =_=;;

수필은 무형식이 기본이건만, 논리적인 타당성이나 문장의 명확성을 요구해서 상당히 짜증나는군요. 개인의 투박함을 드러내는 것이 수필의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러다간 레포트체로 글을 휙휙 갈겨버릴 기세(......)

일단 이 수업 진행하는 교수는 으르렁거리며 보고 있습니다. 하는 것 하나하나가 병맛스럽군요 -_-.

이러고 잘도 교수한다 싶을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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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 시간에는 불안에 관한 수업이었습니다. 불안이 우리에게 주는 불편함이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저는 불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불안이 위험의 인지를 통해 작동하고 위험에 대해 대비할 수 있다고 수업 내용에 나왔는데, 위험을 인지하고 위험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야말로 불안의 순기능이라 생각합니다. 이후의 상황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도록 고민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지금 쓰는 에세이를 들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과제로 쓴 에세이에서 부족한 점 혹은 잘못된 점의 지적을 해 주셨는데, 자신이 쓴 글이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불안한 감정이 글을 계속 고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거듭된 퇴고를 거친 글은 좋은 글이 됨과 동시에 쓰는 이에게는 불안요소를 제거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물론 지나친 불안은 좋지 않습니다. 앞서 장자쪽에 쓴 글에서도 적었던 내용이지만 저는 불안을 ‘이후에 상황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과 ‘어떠한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막연한 불안을 통해 이후에 어떤 상황이 올 지를 예측하거나, 몰라서 찜찜했던 것들을 명확히 해 나감으로서 불안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자신의 지식이나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상대가 어떤 수를 둬서 이기려 할 지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길 확률이 높은 것은 상대의 수를 예측하고, 내가 이길 수 있는 포석을 최대한 쌓아 나가는 것입니다. 상대가 어떤 수를 두는가를 모르는 것도 하나의 불안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불안하다, 혹은 불편하다, 위험하다는 사고는 언제나 사람을 덮치는 요소입니다. 내가 불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불안한 생각은 계속해서 떠오르기 때문에 더욱 힘들어집니다. 수업에서 나온 에픽테토스의 이야기, 즉 “인간은 사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점으로 인해 고통받는다.”는 나의 태도가 문제시된다고 합니다.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고와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상황을 인지하는 태도는 분명히 중요한 요인이겠지요. 그러나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지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대처하는 것을 뛰어넘는 상황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발버둥치는 것이 옳을까요, 쿨하게 포기하는 것이 옳은 상황일까요? 가령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썼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텐데’하는 후회감은 쉽사리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불안을 쉽사리 느끼지 못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치우친 나머지 전체는 완성하나 부분에 대한 소홀함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저는 삶에서 긍정적인 마인드보다는 부정적인 마인드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발표나 과제를 제출할 때 전체보다는 부분부분마다 신경을 크게 쓰는 편입니다. 내가 적어놓고 질문이 올 때 어떤 질문이 날아올지 불안해서 그에 대한 대비를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는데, 생각 외로 노력한 것 외의 질문이 날아오기도 해서 당황합니다. 그렇지만 불안해서 대비했던 것들이 나쁘게 작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노력했던 만큼의 지식은 얻어냈고, 얻은 지식들은 내가 살면서 내 삶에 조금씩, 조금씩 녹아들기 때문입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 대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에게 목표를 하나 두었는데, ‘내가 배운 것을 삶에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시험을 칠 때 ‘어떤 문제가 나올까’하는 불안감은 내가 모르는 범위를 체크하고, 어떠한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는지를 파악하는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개념인 중용은 ‘지나쳐도 안되고, 모자라서도 안된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도 어떠한 것이든 지나쳐서도 좋지 않고, 모자라서도 좋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불안이 나를 망치는 감정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이 총체적 파악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