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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아는 선생님(대학강사)께 추천받아서 한번 읽어본 책입니다. 공동체윤리에 관해 적혀있다길레 봤건만...
결과는 대실망. 이 책이 어째서 베스트셀러에 꼽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1장을 읽을 때부터 그 생각을 했는데, 끝까지 다 읽고서도 여전히 그 결과밖에 남지 않더군요.
개인적인 감상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수업방식을 책으로 옮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업방식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방식이라는데, CD동봉이었으니 나중에 한번 확인을 해 봐야겠군요. 책도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양방의 입장을 논하고, '넌 어떻게 생각해?' 라는 의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지요. 그 패턴의 반복이며, 그것이 이 책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정의'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어느 선택이 더욱 공정한가'에 관해 이야기할 뿐입니다.
우리에게 물음만 던져주고, 명쾌한 해답은 절대로 던져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민할 수 밖에 없지요.
저도 한때 고민했고, 보류했던 문제들을 다시 들추어내는 계기로는 충실했습니다만, 여전히 그 문제들에 대한 답을 낼 수 없었습니다.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이 선문답이고, 동시에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분명 그 때의 선택은 존재하지만, 그것만이 답이 될 수는 없지요. 오히려 놓치고 지나간 요소들을 찾아내면 선택한 답이 잘못되었음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사는 삶 속에서 수많은 것들이 가려지고, 놓치게 됩니다. 우리는 순간을 생각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습니다.
효순이 미순이 사건, 용산사태. 이 둘을 아직도 관심있게 보고 있으신가요? 우리 대다수는 '발끈'하고 잊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찾은 것들만 보고, 그 이후는 더욱 무심하게 있지요. '우리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사는' 존재입니다. 소외받아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힘든 이들이 그러한 삶을 계속하는 세상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샌델이 강의하는 '정의' 수업이 정치철학에 들어있다 보니, [경제분야]에 관련된 논쟁이 대다수더군요. 경제적 불이익에 관한 수많은 논쟁은 한때 자본주의를 까고, 시장논리에 회의적인 제게는 눈쌀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원칙적인 '정의'보다 '사적 이익에 관련된 정의', 즉 '돈문제'에 관한 이야기여서 더욱 싫었습니다. 어느센가 다들 '정치'란 '돈'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듯 한데,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왜 돈을 좋아하는 걸까?'

고대의 정치는 '덕'을 추구한 것이었습니다. 책에서도 언급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모두가 '자기실현'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즈음 되서 근대로 넘어와서야 정치 개념이 '자국존속'으로 바뀝니다만[각주:1], 지금 와서는 [돈벌자]는 마인드가 더욱 켜저서 참 씁쓸합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도 말하듯 '화폐가 우리를 지배하는' 가치전도현상이 심각합니다. 우리가 '왜' 돈을 원하는가를 다 잊고, 그저 '돈만 원하는' 현실을 보고만 있자면, 지난 마르크스 강연때 들은 '라본주의는 노동자를 빨아먹는 자본가에 기생한 2차 기생충'이란 표현이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는 소외의 시대이며, '소비하는 것으로 자기인식하는' 세상입니다. 세계가 더욱 복잡해지고 분할되면서, 우리가 단편적인 것만 보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지 생각하면 참 우습기 그지 없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서 더욱 뽑아내기 쉽게 하겠지만요)

개인적으로는 현대철학자 중에서 푸코의 이론을 좋아하다 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숨겨진 권력관계에 대한 생각이 들더군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요소들을 캐치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이 책은 분명 '가볍게 다가서기에는' 좋은 책입니다. 그러나 어느 수준을 넘어선 이들이 읽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책이죠. 특히나 샌델이 언급하는 사상가들의 측면은 너무나 부실합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놓치는 면이 너무 많다는 점이지요. 특히나 자본주의(책에서는 경제활동에 대한 전반적 이야기)에 들어와서는 정말 할말이 없어집니다. 이 체제하에서 우리가 당하고 제외되는 수많은 가혹행위들은 묵인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이론적 측면]에서의 접근이라 더욱 아쉽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그런 일이 없는줄 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니, 여러모로 씁쓸하네요.

책에서 남겨주는 여운은, 그렇게나 쓴맛만을 상기시키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래봤자 바뀔 일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그랬다면 지금의 6공화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6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희생한 이들은 대단한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옆집 형, 아저씨, 아주머니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나이든, 반 세대 위의 386 세대가 대수였습니다. 제가 알던 교수님도 그 시절에 조교생활을 했지만, '정장을 입고 퇴근하면서 바로 시위에 참여했다'면서 시대를 회상하시더군요. 정치에 격분하고, 토론하는 대학생들도 있습니다. 지금 틀에 박혀서, 안전빵이 최고라는 생각만 하신다면 그것도 자신의 삶의 방식이겠죠.
마키아벨리의 저서 [로마사 논고]에는 '공화정'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동경이 가득합니다. 지금 우리는 민주 공화정[각주:2]에서 살고 있으나, 우리가 주인이라는 사실들을 잊어버리고 살아왔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은 이렇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나마 우리가 행사하는 권력은 '투표'정도겠지요.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모여서 이야기 하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카프카의 멋진 말을 인용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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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이렇게나 많이 있다. 다만 내 것이 아닐 뿐이다'
- 프란츠 카프카, 폴란드 작가

희망을 찾으세요. 내 것이 될 희망이 어디엔가 있을 겁니다. 공화정이란, 더욱 건전해지기 위해서 사람들 간의 대화를 원합니다. 희망이란 크게, 거창하게 오는 것도 아닙니다. 소소하게, 아무도 모르게 배어 나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모르나, 그 변화의 극단에 있는 이들만이 눈치채겠지요.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말이죠.

P.S
 이 글을 쓰면서 가면라이더를 보던 탓인지.. 가면라이더 쿠우가의 한 대사가 생각나더군요.
'이딴 것들 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이 눈물은 보고 싶지 않아, 모두가 웃고 있기를 바래. 그러니까 봐 주세요! 나의 변신!'(묘한게 평성라이더는 역행해서 볼수록 역작같아요....)

P.S 2
친구와 '이딴게 왜 베스트셀러지?'하던 도중 MB가 휴가중 이 책을 봤다는 X드립을 들었고, 지인에게 말했더니
'책표지 보이게 사진찍고 던졌겠죠'라는 명쾌한 해답을 주더라능(....) 책을 제대로 읽었으면 지금같은 일이 안나오지(.......)



P.S 3
언급하는걸 까먹었는데, 도덕경의 한 구절도 같이 떠올랐던걸 안적었습니다.
도덕경 18장의 내용입니다.
大道廢 有仁義     큰 도가 사라지니 인의가 나타나고
慧智出 有大僞     얕은 지혜들이 나오니 거짓됨(혹은 꾸밈)이 생기고
六親不和 有孝慈  가족간의 화목함이 없으니 효성과 사랑이 나타나며
國家昏亂 有忠臣  국가가 어지러우니 충신이 나타난다.

[출처] 노자도덕경18장|작성자 벽담

여러 모로 역설적인 세상 이야기. 현대판 음서제 이야기라던가, 死대강 殺리기라던가 'ㅅ'....
  1. 르네상스 즈음해서 정치의 개념이 바뀌기 시작합니다만, 마키아벨리를 공부하시면 확실히 드러나지요. [본문으로]
  2.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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